대검찰청 관계자들이 지켜보는가운데
대검 중수부 현판을 떼어내고있다
대형 특수수사의 총본산이자.정치검찰이란 오명의 진원지였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3일 완전히 사라졌다.
1981년 4월 "중수부" 현판을 단지 32년 , 전신인 중앙수사국이 1961년 4월 발족한지 52년만이다.
이날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10층의 중수부 사무실앞에서 현판 철거식을 갖고 채동욱 총장과 길태기 대검차장이 참석하고 대검 참모부 서장들과 중수부 연구관등 관계자 30여명이 철거되는 현판을 지켜봤다.
이두봉 대검 연구관이 중수부의 연혁과 역사를 소개하고 박유수 관리과장이 현판을 떼어내면서 중수부도 함께 떨어진셈이다.
이어 중수부 현판은 검찰역사관에 보존된다. 향후 중수부에 관한 백서를 발간하고 검찰 역사관에 중수부 섹션을 설치해 그간의 중수부에 대한 공,과를 남길예정이다.
중수부는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지난달 여,야 합의에 따라 폐지됐다.
중수부의 역사는 1949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48년 12월20일 검찰청 법이 제정되면서 중앙수사국 설치규정이 만들어 졌으나 예산등의 문제로 발족하지못했다.
그후 1961년 4월 9일 중앙수사국이 정식 발족했고 1973년 1월25일 특별수사부로 개편됐다. 이후 1981년 4월 24일 지금의 중수부로 이어온것이다.
중수부는 검찰총장의 하명사건을 수사하는 직할부서이자 전국의 지검, 지청, 특수부를 총괄 지휘하는 사정의 중추기관으로 현대사의 획을긋는 굵직한사건 수사를 도맡아왔다.
1966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성과를 올린 중수부는 1982년 이철희 ,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으로 거억 척결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사건 (1987년)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사건(1991년), 율곡사업비리사건(1993년)등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비자금사건(1995년)---등의 최근의 저축은행비리수사(2011년)사건등이 중수부의 공으 로 남았다.
중수부는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표적사정, 편파수사 시비와 함께 "정치검찰 "권력의시녀" 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사건수사에서 필의사실 공표 논란이 발생했고 결국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졌다.
검찰의 정치적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이명박 정권내내 이어졌고 급기야 박대통령은 중수부 폐지를 결정했다.
이에 검찰은 중수부 폐지에 따른 업무공백을 줄이고 특별수사체계를 전면개편하기위해 이날 대검에 "검찰 특별수사체계 개편추진 T/F 를"출범시켰다.
T/F 팀은 "특별수사지휘및 지원부서"가 새로설치될떼 까지 일선청에 대한 수사지휘및 지원업무등 최소한의업무를 수행한다.
한편 T/F 총괄은 오세인 전 대검기획부장 (현 법무부연수원 연구위원) 이맡고 이동열 서울고검검사 ,팀장하에 이두봉 대구고검 부장검사 ,조상준 대검 연구관등이 팀원으로 활동한다.
T/F는 검찰 수사의중립성확보 ,부정부패대응역량의 확충 ,인권보호 강화를 기본방향으로 삼아 단순한 기구개편이 아닌 특별수사 체계전반의 문제를 진딘하고 개선방향을 연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