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의 대법원장 사퇴 압박, 민주주의 근간 흔든다
정청래·추미애 퇴진 압력, 대통령실도 논란
삼권분립 원칙 해치는 위험한 시도 멈춰야
정부·여당의 사법부 흔들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대법관 증원 등을 내걸고 사법부를 압박해 온 더불어민주당이 급기야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정청래 대표는 어제(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대법원장은)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면서 “대법원장이 그리도 대단하냐, 대통령 위에 있느냐, 국민의 탄핵 대상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도 “내란 재판의 신속성과 공정성을 침해하는 장본인”이라고 조 대법원장을 겨냥했다.
논란은 대통령실까지 번졌다. 강유정 대변인은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브리핑했다가 파장이 커지자 재차 브리핑을 열어 “(브리핑의) 취지를 오독한 것”이라며 “특별한 입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황급히 수습했지만 임기가 헌법으로 보장된 대법원장에게 중도 퇴진을 강요하는 행위는 매우 부적절하다. 독립성이 생명인 사법부의 수장을 집권당이 힘으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다.
민주당의 조 대법원장 흔들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탄핵과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6·3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론 악화를 우려해 한발 물러섰다. 대선이 끝나자 불과 석 달 만에 다시 대법원장 사퇴 카드를 꺼냈다.
이번 퇴진 요구의 발단은 지난 12일 전국 법원장 회의였다. 법원장들이 “사법개혁 논의에 사법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내자 여권의 본격적 압박이 시작된 것이다. 사법의 근간을 바꾸는 변화 구상에 사법부의 참여는 필수다. 상식적인 의견을 냈다고 대법원장을 직격하니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내란특별재판부 추진이 위헌 논란에 휘말리자 ‘특별’을 ‘전담’으로 이름만 바꿔 밀어붙이고 있다. 급기야 어제는 “국정농단전담재판부 설치가 시급하다”(전현희 의원)는 주장이 등장했다. 행정·입법권을 장악한 여권이 사법부마저 입맛대로 손보려 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당장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실이 조 대법원장을 사퇴시키고 이 대통령 유죄판결을 뒤집으려 할 것”(장동혁 대표),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쫓아내는 것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고 탄핵 사유”(한동훈 전 대표)라는 강경 발언이 쏟아졌다.
대법관 증원이나 전담재판부 신설 같은 사법 개혁은 여야와 사법부가 머리를 맞대고 최적의 방안을 모색해야 마땅한 사안이다. 그런 협의나 대화의 시도조차 없이 대법원장부터 흔드는 여권의 태도는 위험하다. 정부·여당은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더는 훼손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