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무시하는 척 하면서도 가끔 은밀한 시선을 주고 받았
은 무시하는 척 하면서도 가끔 은밀한 시선을 주고 받았다 경황도 없었겠지만 민주영은 올백 머리를 정기훈에게 소개시켜주지 않았다 비서나 운전사로 착각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의자에 등을 붙인 정기훈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잠든 김소라를 다시 보았다 팔에는 링거를 꽂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김소라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러나 피부는 매끄러운 데다 감은 속눈썹이 가지런히 눕혀졌고 입술은 단정하게 닫혀 있어서 그림처럼 고운 모습이었다 한동안 김소라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정기훈은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뱉았다 자살까지 시도한 김소라에게 미안한 감정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정기훈이 잠든 김소라의 얼굴에 대고 낮게 말했다 난 네가 이렇게까지 고통받고 있을 줄은 몰랐어 정말이야 김소라의 이마에 늘어붙은 머리칼 몇올을 쓸어올려 주면서 정기훈이 말을 이었다 넌 괜찮은 애야 얼마든지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어 네가 몰라서 그래 너한테 지금 말하지만 난 상처를 꽤 받았어 그건 내가 가벼웠기 때문이라고 반성을 해 왜냐하면 절실한 적이 없었으니까 여자를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거든 그것이 상대를 떠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요즘에야 깨닫게 되었지 그것도 다시 상처를 받고나서야 그 상대는 오민지가 될 것이다 오민지가 뉴욕으로 떠났다는 말을 듣고나서 정기훈은 생활에 의욕을 잃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렇지 않았다 이번에야 말로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허무감 또는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이 밀려왔으며 집중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투쟁의 기간이었다 생의 의욕을 일으키려는 외로운 투쟁의 기간 이것은 아무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도 인간에게 뇌가 주어지고 감성이 생각이 주어진 것은 은총 같지만 실은 고통이다 업보이기도 하다 오빠 갑자기 김소라가 불렀으므로 정기훈은 퍼뜩 놀랐다 눈을 크게 뜬 정기훈은 맑은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김소라를 보았다 깨었어 엉겁결에 그렇게 묻자 김소라가 이를 드러내고 소리없이 웃었다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어서 정기훈의 가슴이 뛰었다 응 그리고 그리고 뭐 다 들었어 다 듣다니 뭘 오빠가 한 말 그냥 혼잣소리야 입맛을 다신 정기훈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