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은 알았다. 슬로건 없이는 혁명도 없다. 1917년 2월혁명으로 조성된 이중권력의 혼돈기에 혁명세력의 즉각적인 권력 장악을 독려하며 그가 제시한 슬로건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다. 중요한 건 7월 봉기 직후 정세가 급변하자 그가 나서 이 슬로건의 폐기를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레닌이 볼 때 슬로건은 어디까지나 ‘구체적 현실’에서 도출되는 ‘잠정적 행동 지침’이어야 했다. 슬로건이 도그마가 되는 순간 혁명도 끝장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축인 한국 리버럴의 핵심 슬로건은 ‘검수완박’(검사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여기에 강한 정념을 투사하게 만든 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2019년 조국 사태다. 시작은 정치논리였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이란 막강한 권한을 틀어쥐고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군림하는 한, 아무리 민주적이고 개혁 의지가 강한 정부가 들어선들 검찰과 결탁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밀려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근본 인식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평범한 시민의 일상에서 너무나 멀리 있는 존재였다. 따라서 검찰 권한을 축소하려는 민주당의 시도는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한 지배 엘리트만의 권력 놀음으로 오인받기 쉬웠다. 이 난점을 보완한 게 ‘누구나 범죄 사건에 연루될 수 있고, 수사·기소 과정에서 권익을 침해당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형사사법 제도의 목적인 ‘국민 권익 보호’와 ‘사법 정의 실현’이 검수완박에 대한 최종 심급의 정당화 논리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지난 3월 검사의 수사개시권과 직접 수사 기능을 원칙적으로 전면 배제한 공소청법 제정은 경찰 수사에 대한 보완, 경찰 권력에 대한 통제 필요성을 새롭게 쟁점화했다. 경찰은 시민의 삶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상의 형사 권력이다. 이 경찰이 검찰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 수사의 전권을 휘두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실 수사와 사건 처리 지연, 고의적 누락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시민이 제도 변화로 인해 맞닥뜨릴 구체적 위험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장윤기 사건까지 터져 경찰 수사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커졌다. 여론은 ‘검사 보완수사권을 남겨둬야 한다’(61%)가 ‘전면 폐지’(23%)를 압도했지만(한국갤럽 7월14~16일 조사), 민주당은 완강했다. 이들에게 검수완박의 순수 원칙에 어긋나는 보완수사권은 아무리 제한적 수준의 것이라도 남겨둬선 안 되는 것이었다. 원칙을 오염시키는 예외의 틈입은 어렵게 쟁취한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트리거(방아쇠)가 될 것이라 본 것이다. 보완수사권 폐지가 초래할 공백과 부작용을 우려했던 신중론자들 눈에는 이들이 ‘수사-기소 완전 분리’라는 제도적 디자인의 형식적 완결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7월31일 민주당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국회 가결을 주도했고, 논란 많았던 보완수사권도 결국 사라졌다.
이 모든 과정은 중요한 순간 한국 리버럴의 선택을 결정적으로 제약했던 ‘도착’과 ‘자기유폐’라는 병적 징후를 냉정히 돌아보게 만든다. 전선을 긋고 힘을 결집하기 위해 안출한 정치적 상징 언어가 행위자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면서 최초의 목적 자체를 증발시켜버리는 증상이다. 검수완박도 따져 보면 대중에게 복잡한 사법개혁 담론의 요체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목표 지점을 선명하게 제시하기 위한 인지 프레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완박’이란 기표가 일체의 절충과 타협을 단죄하는 현실의 교리 지침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슬로건의 감옥’이 구축된 것이다.
이 감옥은 ‘말과 행위의 교환’인 정치를 ‘계시와 추종’의 신앙 행위로 강제 교화시킨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이곳을 탈출하지 않는 데는 그 안에서 느끼는 편안함도 적잖게 작용하는 것 같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과 대면할 때 엄습하는 피로와 불안을 감옥의 울타리가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 편안함은 1961년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 지방법원을 찾은 해나 아렌트가 피고인 아돌프 아이히만한테서 감지해낸 감정 상태와 내게는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슬로건과 상투어로 점철된 아이히만의 법정 진술을 보고 뉴욕으로 타전한 아렌트의 기사는 이렇다. “어떤 소통도 불가능했다. 그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언어와 타인의 존재로부터, 나아가 현실 자체로부터 그를 방어해주는 가장 확실한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